2013년 6월 27일 목요일

상현달

어스름 저녁 사랑하는 사람과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해보다가
상록수 반월 대야미
입속에서 둥굴게 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그 고운 지명을 한 번 불러보다가
고개 들어 수리산 등선을 바라보니
불현듯 검은 복면으로 얼굴 가리고
눈만 드러낸 아라비아
반월도 칼을 든 상현달
아무래도 오늘 달빛이 수상하다고
저 달이 자기 몸을 이리 저리 들춰보더니
스윽 하늘을 베면서 간다
푸른 빛의 칼에 베인
살갗이 환하게 열리더니
전날에 감추어둔 처녀 부끄러운
속살 같은 비밀을 다 드러내 비춰주더니
아, 무수하게 쏟아지는 별의 혈흔
상처가 깊어야지
몸이 저리도 아름답게 빛이난다고
앞전에 달빛 몰래 몽유병처럼 살을 섞고
지나가던 시냇물이 한 마디 하고 간다
시퍼런 칼 하나 따라 가는 길은
섬 하나 없는 먼 바닷길로 아득하다
하늘은 물 만큼이나 속으로 더 깊어지고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할지
수리사 절 기와지붕에 잠시 앉아
가부좌 하고 명상에 잠긴 상현달이
바람도 없는 억새밭 흰꽃을 흔든다
뒷란의 대나무 줄기 끝
무수한 댓잎이 드러누웠다 일어섰다 한다
세상의 마음이 저렇게 아픈 걸 보니
내몸의 상처도 깊은가 보다
상현달
달빛이 내 마음을 하늘처럼 베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