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9일 화요일

신석정의 ´네 눈망울에서는´ 외


<눈동자에 관한 시 모음> 신석정의 ´네 눈망울에서는´ 외

+ 네 눈망울에서는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오월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는
초롱초롱한
별들의 이야기를 머금었다.

네 눈망울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鐘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서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신석정·시인, 1907-1974)
+ 별눈동자

까만 밤하늘에 깜박이는
별들을 보면
먼저 간 그리운 이들의
눈동자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

시든 난초에 물은 주는지
뒷산 소쩍새 울음소리는 듣는지
난전에서 양심을 팔지 않는지
희망의 불씨는 잘 키우고 있는지
늘 지켜보는 것 같다
(최대희·시인, 1958-)
+ 눈빛

당신의 눈빛이
내 마음에 꽂히자마자
퍽, 소리가 났습니다
내 안의 것들이 한꺼번에
풀썩 주저앉는
소리였어요
어떻게 알았지요?
당신은 이미
내 마음을
찬찬히 읽고 있었습니다
감추고 싶었는데
다 들켜버리고 말았어요
(홍수희·시인)
+ 사랑의 눈동자

허공 속에는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눈동자가 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내가 무엇을 입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 눈동자는 단 한 번도 나를 지우지 않는다

이 지상에 나의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나의 이름도
나의 모습도
내가 맺은 수많은 인연도
마침내 나의 목숨도
이제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나의 몸짓에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눈물 젖을 때도 있었으리

때로는 내가 사용했던 언어에
마음의 강
깊게
흐리지 않았으리

어둠에 누워
내 돌아갈 허공을 바라보면
나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사랑의 눈동자가 있다.
(유국진·시인, 경북 영덕 출생)
+ 눈동자

한 생명 꺼지는 순간
마알갛게 동공이 풀려진다
하늘빛을 여과 없이 담으려 한다
애써 투명해지지 않으려
두 눈 부라리고 살아온 날들
서러움 없이 벗어두고
가벼워지려 한다
그곳에는 무게의 단위가 없다
(지철승·시인, 충남 부여 출생)
+ 눈동자

파아란 눈동자가
내 안에 들어와서 별이 되었다.
갈색의 눈동자는
내 안에 들어와서 살을 서걱이는
바람이 되고,
초록의 눈동자는
내 안에 들어와서 달가닥 달각
뼈를 건드리는 옥돌이 되었다.
나와 같은 빛깔의 검은 눈동자는
지금 소리 없이
내 안에 들어와서 무엇이 되려는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박희진·시인, 1931-)
+ 새의 눈동자

양지 녘 한 무리 새들은
장미나무 가시를 잘도 피하여
파랑 파랑 지저귄다

열매 없고
벌레 없는 계절
무얼 먹었나

비운 몸은 가벼이
하늘을 날고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지 않는 새
사람의 마음 안에 끌어들이다니

새의 까만 눈동자엔
하늘도 오무려 담기는데
사람의 눈에선
흩어진 하늘이 쏟아진다
(장미숙·시인, 충남 홍성 출생)
+ 낙엽의 눈동자

낙엽이 땅에 떨어져서도
썩지 않는다고 걱정들이다
도시의 어느 날, 문득 길을 가다가
선명한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땅에 떨어져서
귀퉁이 하나 상하지 않고
곱게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
아니, 아니
이걸 밟을 수는 없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낙엽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이런 걸 질근질근
밟아버릴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수북수북 쌓아놓고
일부러 불태우고 밟아버리라니
참으로 낭만적이다 낭만적이야.
(박현령·시인, 1938-)
+ 나는 네 눈동자 속에서 살고 싶어

나는 네 눈동자 속에서 살고 싶어.
네 눈이 보는 것을 나도 보고
네 눈에 흐르는 눈물로 나도 흐르고 싶어.
어쩌다 웃고도 싶어.
밤이면 네 눈 속에 뜨는 별처럼
나도 네 눈 속에서 별로 뜨고 싶어.

간혹 꿈도 꾸고 싶어.
네 눈 속에 꿈꾸는 길이 있으면
나도 네 눈 속에 꿈꾸는 길이 되고 싶어.
끝없이 걸어가는 길이 되고 싶어.

어쩌면 그 길에서 나그네도 보겠지.
그러면 나도 네 눈 속에서
먼길을 걸어가는 나그네가 되고 싶어.
풀밭에 주저앉아 가끔가끔 쉬어도 가는.

나는 네 눈동자 속에서 살고 싶어.
네 눈이 가리키는 방향을 나도 보고
네 마음의 풍향계도 바라보고 싶어.
저기, 키 큰 미루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군.

네 눈 속에는 바람이 지나고 있어.
나도 네 눈 속을 지나는 바람이고 싶어.
네가 보는 것을 나도 볼 수 있지.
왜냐하면 나는 네 눈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네 눈 속에는 멧새가 살고 있어.
갓 움이 돋은 고란초도 살고 있어.
그날은 비 갠 오후 저녁 때
네 눈동자 속에는 무지개가 걸려 있었지.

나도 네 눈동자 속에 무지개로 내리고 싶어.
그리하여 네 가장 아름다운 젖무덤에
어린 양처럼 유순한 코를 박고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잎의 모습으로 죽고 싶어.

나는 끝끝내 네 눈동자 속에서 살고 싶어.
(박정만·시인, 1946-1988)
+ 네 눈동자

바람 친다 네 눈동자에는
언제나 새 세상이 들어 있다
말없이
오늘 거짓없이
네 검은 눈동자에는
언제나 새 세상의 별이 빛나고 있다.
몇백 억 광년 동안 달려와서 이제야 이 땅 위에 빛나고 있다
탄압이 우리를 다시 모이게 한다
네 눈동자는 더욱 빛난다
새 세상이다
새 세상이다
탄압이 우리를 새롭게 한다
어제의 이데올로기는 오늘의 이데올로기의 무덤이다
너뿐이 아니다
여기 모인 수많은 눈에도
하나하나 빛나고 있다
새 세상의 별이 빛나고 있다
긴 밤 새워 발 구르며
우리는 한 덩어리다
네 눈동자에는
꼭 오고야 말
그 세상이 들어 있다
오 별보다 더 찬란한 네 눈동자여
탄압이 우리를 뭉치게 한다
(고은·시인, 1933-)
+ 눈동자

당신의 달빛
은은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의 마음에는
아늑한 평화가 밀려온다

당신의 별빛
고운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나의 마음은
아가처럼 순수해진다

당신의 햇살
담은 눈동자를 훔쳐보며

나의 마음속
어둠은 총총 사라진다

그 눈동자
사르르 감겨

영원한 안식에
드는 날

나의 마음은
지는 꽃잎처럼 무너지겠지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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