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려 주었던
폭설 한꺼번에 녹을 것이니
귀 막아주었던 얼음
순식간에 녹을 것이니
물 먹은 세상의 몸들이
질퍽질퍽하게 변하리라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허리까지 목까지
흙의 갑옷을 입고
두 손으로 허우적거리리라
흙의 투구까지 뒤집어 썼으니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흙에 허리 꺾여지리라
흙에 무릎 꿇으리라
느닷없이 들이닥친
흙의 강물에 빠져
벗어날 수 없으리라
붙잡을 것 없이 휩쓸려가다가
다리에 묻은 저 진흙의
사실을 떼어낼 수 없으리라
어깨에 묻은 저 진흙의
진실을 털어낼 수 없으리라
옷 속에 달라붙어
살갗인 척 느끼고 있으리라
살 속에 달라붙어
정신인 척 생각하고 있으리라
몸 따라 간다고
마음마저 진흙의 바다가 되리라
내가 진흙에게 복종하리라
진흙이 나를, 세상을 거느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