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8일 수요일

정현종 시인의 ´창(窓)´ 외


<창문에 관한 시 모음> 정현종 시인의 ´창(窓)´ 외
+ 창(窓)

자기를 통해서 모든 다른 것들을 보여준다.
자기는 거의 不在에 가깝다.
부재를 통해 모든 있는 것들을 비추는 하느님과 같다.
이 넒이 속에 들어오지 않는 거란 없다.
하늘과,
그 품에서 잘 노는 천체들과,
공중에 뿌리내린 새들,
자꾸자꾸 땅들을 새로 낳는 바다와,
땅 위의 가장 낡은 크고 작은 보나파르트들과.....
눈들이 자기를 통해 다른 것들을 바라보지 않을 때 외로워하는 이건 한없이 투명하고 넓다.
聖者를 비추는 하느님과 같다.
(정현종·시인, 1939-)
+ 창

창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에게
오늘의 뉴스다.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십이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김현승·시인, 1913-1975)
+ 유리창

가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웃다가
울다가
어른이 되고
삶을 배웠네

하늘과 구름과 바람
해와 달과 별
비와 꽃과 새

원하는 만큼
아름다운 모든 것을
내 앞으로
펼쳐 보이던 유리창

30년을 사귄 바다까지
내 방으로 불러들여
날마다 출렁이게 했지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투명한
문으로 열려야 할 차례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유리창의 푸른 노래
내 삶의 기쁨이여
(이해인·수녀, 1945-)
+ 책꽂이를 치우며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안이 환하다
눈앞을 막고 서 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둔 길 헤쳐간다고 천만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도종환·시인, 1954-)
+ 열어 두어

가느다란 바늘에
작은 창 하나 열려 있다

열어 둔 창으로
야윈 실 하나 들어와
바늘과 손잡고 일을 한다

길 잃은 단추
데려다 주고
양말 상처
치료해 준다.
(정갑숙·아동문학가)
+ 문門

흙의 대문을 열고
나무가 올라온다
나무의 미닫이문을 열고
꽃이 올라온다
꽃의 창문을 열고
향기가 퍼져나간다
몇 번
달이 차고 기울었으므로
자물쇠 풀어지고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에는
숨겨진 문이 있다는 것인데
어제 적신 빗발이나
오늘 쌓인 눈발이나
어디서 왔겠는가
저 위의 어느 문이
비로소 열린 것이다
당신도 한 열 달
뱃속에 만삭으로 품고 있다가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문밖으로 건네주었으니
그 목숨이
또 문을 열고
새벽 같은 문을 만들고 있다
(김종제·시인)
+ 병상일지 - 창

이처럼 고단한 눈으로
창을 바라본 적은 없었다
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음의
경계를 바라본다
답답한 병실에서 창은 또 하나의 우주다, 희망이었다
창을 열면 대도시의 거대한 빌딩 사이로
역동스런 삶의 소리
앙상한 가로수를 핥고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
경적을 울릴 때마다
꿈틀거리는 병실의 창이
햇살을 실어 나른다

어렸을 땐
엄마가 세상과 내통하는 유일한 창이었다
유년에는 언니가 나의 창이 되어 주었다
사춘기 때에는 친구가, 선생님이
삶의 조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창이 되어야 했다
사람은 어느 누구든 몇 개의 창을 가지고
길 위에서, 세상에서 헤매이고 꿈을 캐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나는 창이 되어 본 적 있었는가?
나의 창을 필요로 하는 사람
있었는가?
(김규리·시인, 충남 예산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김남주 시인의 ´민중´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