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2일 월요일

길상호의 ´국화가 피는 것은´ 외


<국화에 관한 시 모음> 길상호의 ´국화가 피는 것은´ 외

+ 국화가 피는 것은

바람 차가운 날
국화가 피는 것은,
한 잎 한 잎 꽃잎을 펼 때마다
품고 있던 향기 날실로 뽑아
바람의 가닥에 엮어 보내는 것은,
생의 희망을 접고 떠도는 벌들
불러모으기 위함이다
그 여린 날갯짓에
한 모금의 달콤한 기억을
남겨 주려는 이유에서이다
그리하여 마당 한편에
햇빛처럼 밝은 꽃들이 피어
지금은 윙윙거리는 저 소리들로
다시 살아 오르는 오후,
저마다 누런 잎을 접으면서도
억척스럽게 국화가 피는 것은
아직 접어서는 안 될
작은 날개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길상호·시인, 1973-)
+ 들국화

한얼산
기도원 올라가는 길에
소솔히 웃고 선
막달라 마리아

멸시를 이기더니
통곡을 삼키더니
영원한 남성의
영원한 사랑을 획득하고 만
여자

어리석은 그 여자가
지혜롭게 곱삭여낸
잘못 살아온 세월의 빛깔

보랏빛 연보라
천상의 웃음 띠우고
마중 나오신 성녀
막달라 마리아.
(유안진·시인, 1941-)
+ 모두가 들국화 시인이 되게 하라

이번 가을은 농부들 마음 위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게 하라.
그리하여 섬돌 아래에서 사발로 줍게 하라.
튕겨낼 듯 댓가지 휘고 있는 가을 과일들도
그 꽉 찬 결실만 생각하며 따게 하라.
혹 깨물지 못할 쭈그린 얼굴이 있거든
그것은 저 빈 들녘의 허수아비 몫으로만 남게 하라.
더 이상 지는 잎에까지 상처받지 않고
푸른 하늘과 손잡고 가고 있는 길 옆 들국화처럼
모두가 시인이 되어서 돌아오게 하라.
(김영남·시인, 1957-)
+ 들국화의 교훈

넓은 들판 내 집 삼아
유유자적 노닐고 있는
작은 얼굴을 가진 들국화 무리들

보는 이 없으면 어떠하랴
만져 주는 이 없어도 외롭지 않은데
은은한 향기로 가득 밴
소박한 미소 던져 주고 있는데

세상사 초월한 인내로
삶의 순리를 보여주고 있잖아
(이순복·시인, 경기도 출생)
+ 가을꽃 국화

해는 저만큼 물러서고
들판에 떨어져 남은 낟알들 위에
서리 하얗게 내리고
굴참나무 숲은
그 많은 잎을 다 쏟아내고 있다.
하루하루 도토리 여물고
하루하루 강물 차가워질 때
살아있음의 절정에 닿는
가을꽃 국화
땅의 열기 식도록
향기 담고 있다가
사람들 무채색의 시간을 덮으며
한 뼘씩 점령한다
남아있는 날들을 물들인다.
(안경원·시인, 1951-)
+ 들국화

바람 부는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생각 말자고,
아주 아주 생각 말자고.

갈꽃 핀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잊었노라고,
아주 아주 잊었노라고.

구름이 헤적이는
하늘을 보며
어느 사이
두 눈에 고이는 눈물.
꽃잎에 젖는 이슬.
(나태주·시인, 1945-)
+ 들국화

발끝에는
네가 두고 간 기억들이
그림자 밟기를 하고 있어.
너를 보내고
아픔을 먹고 자란 그리움이
찬이슬에 목을 축이며
보라색 꽃잎으로 떠올랐지.
아마, 너는 지금쯤
내 눈물을 보고 있을 거야.
(목필균·시인)
+ 국화

꽃이 필 무렵
첫눈 내린다는 소식을 듣는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다가
그리움이 이울기 전
돌아누운 그림자
한아름 모두어 향을 피운다
코끝에 차오르는 너의 향기
새하얀 무서리 밟고
여윈 계절 아쉬워 눈물 흘린다.
(권영민·시인)
+ 들국화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간
절벽 끝에서
당신은 하얗게 웃고
오래 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곽재구·시인, 1954-)
+ 들국화

나는 물기만 조금 있으면 된답니다
아니, 물기가 없어도 조금은 견딜 수 있지요
때때로 내 몸에 이슬이 맺히고
아침 안개라도 내 몸을 지나가면 됩니다
기다리면 하늘에서
아, 하늘에서 비가 오기도 한답니다
강가에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 지며
나는 자란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찬 바람이 불면
당신이 먼데서 날 보러 오고 있다는
그 기다림으로
나는 높은 언덕에 서서 하얗게 피어납니다
당신은 내게
나는 당신에게
단 한번 피는 꽃입니다
(김용택·시인, 1948-)
+ 들국화

간밤 무서리에
추운 기색도 없이
담담히 서 있네

어둔 밤 찬 서리
견디어낸 아침
더 환한 얼굴

바람비 저렇게 견디었을까
들꽃 향기는 저기서 날까

더러는 찢긴 잎새
가슴 저려도
나즉이 나즉이 흔들리면서
저렇게 뿌리를 지키고 살까
(손상근·시인)
+ 들국화를 위하여

꽃을 피우지 못한들 어떠랴.
두 팔 벌려 서 있는 것만으로
가슴 가득 하늘을 마실 수 있고

씨를 맺지 못한들 어떠랴.
향기를 피우는 것만으로
가을은 알차게 익어가는데

돌보지 않는다고 시든 적 없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눈물 흘리지 않는
들국화를 위하여

조금은 외로운 곳에서
그리움 가득
그대 이름 불러보는 것만으로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들국화

무심히 지나치는
들꽃이 아니길 소원하였다

그리움이 설움으로 전해져
잰걸음으로 다가와

수줍은 영혼에 손을 내미는
간절함이 아닐지라도

그저 님 그리워
그리워서

첫 길목에서 맞이하고픈
수줍은 바램이

길 먼지 흠뻑 뒤집어써도
나는 좋아라
(공석진·시인)
+ 국화꽃 아래 눕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빨강 노랑 유리구슬
이 가을에 하나하나
꽃으로 꽃으로 피어난다

노란 구슬 꽃이 되어
가을 하루 열리고
초록구슬 꽃잎 벌려
추억 하나 생각 진다

올망졸망 꽃 구슬
하나, 둘 세어보다
끙!
그만 국화꽃 아래 눕다.
(김영철·시인)
+ 국화잎 베개

국화잎 베개를 베고 누웠더니
몸에서 얼핏얼핏 산국 향내가 난다

지리산 자락 어느 유허지 바람과 햇빛의 기운으로 핀
노란 산국을 누가 뜯어주었다
그늘에 곱게 펴서 그걸 말리는 동안
아주 고운 잠을 자고 싶었다

하얀 속을 싸서 만든 베개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아픈 머릴 누이고 국화잎 잠을 잔다

한 생각을 죽이면 다른 한 생각이 또 일어나
마른 산국 향을
그 생각 위에 또 얹는다

몸에서 자꾸 산국 향내가 난다
나는 한 생각을 끌어안는다
(조용미·시인, 1962-)
+ 국화꽃을 따다

햇볕과 맑은 바람에
잘 그을린
국화를 고른다
그리움이 꿈틀거리는
향내를 최대한 숨기고 있는
국화꽃을 딴다
국화차로 거듭나기 위해
누군가의 손에 간택되어 질 때까지
다음 생을 침묵으로 마감하며
태양과 호흡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을의 뜨락에서
청춘을 바치고
비로소 빈 들녘처럼 떠나갈
아름다움이여,
꽃술을 흔들며
그 흔한 고독을 느껴 볼 겨를도 없이
나의 찻잔 속에서
윤회의 고통을 우려내고 있다
(김규리·시인, 충남 예산 출생)
+ 국화차(菊花茶) 한 잔

생명이 꿈틀대는
엷은 초록 빛깔처럼
곱고 깊은 맛, 뒤끝이 깨끗한 삶을 위해

차 한 잔 앞에 놓고
뜨거운 물 속에 차 잎을 띄운다.

채 우려내지도 못한
차 잎의 떫은맛 같던 날들은
국화의 향기로 짙어지고
진솔함으로 잘 우려낸다.

국화차 한 잔,
연노랑 빛 따스함이 스며 나온
담백하면서도 향긋한 여운이 남는
삶을 음미하며

은근하면서 잔잔하게
우려낸 국화차 한 잔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엷은 초록 빛깔처럼
곱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노라면
오랜만에 가슴이 더워진다.
(이인혁·시인, 1954-)
+ 노란 국화 한 송이

가을에 사랑하는 이를 만날 때는
노란 국화 한 송이를
선물하세요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두 사람을 더 가까이
있고 싶어지게 만들어줄 거예요

깊어만 가는 가을밤
서로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불어오는 바람도 포근한
행복에 감싸게 해줄 거예요

밤하늘의 별들도
그대들을 위해 빛을 발하고
밤길을 밝혀주는 가로등도
헤어지기 싫어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을 거예요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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