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안도현의 ´우주´ 외


<우주에 관한 시 모음> 안도현의 ´우주´ 외

+ 우주

잠자리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곳까지가
잠자리의
우주다

잠자리가 바지랑대 끝에 앉아 조는 동안은
잠자리 한 마리가
우주다
(안도현·시인, 1961-)
+ 미시령 노을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우주의 질서

어둠이 온다
밝음에 앞서 어둠이 온다
별이 기다려 같이 온다
잠도 기다려 온다
새벽이 온다 밝음에 앞서
어둠이 간다
잠도 간다
(김광섭·시인, 1905-1977)
+ 축복

우주는
신의 몸

네 죄는
삼라만상을
사랑하지 않은 죄

사랑을 넘어 차라리
이젠 미물조차 공경하므로

용서받으라
또한
축복을!
(김지하·시인, 1941-)
+ 우주의 책

지구 위에서 날마다
우주의 책을 펼치지

넘기고 넘겨도 다시 남고
읽고 읽어도 다시 처음

한평생 나는
무엇을 읽었는가

마침내 나는
보이지 않는 신의 그림자를 보았는가

내 앞에 놓인 책 한 권 다 읽지 못하고
책 읽는 나조차 다 읽어내지 못하고

어리석은 한 생애
끝없는 독서

저녁마다 나는 별빛 아래 쓰러지고
새벽마다 나는 햇살 아래 부활하지.
(정성수·시인, 1945-)
+ 사과 한 톨에 우주가 들어있다

사과 한 톨을
두 쪽으로 쪼개본다
그 속에 까만 씨앗들이 들어있다
씨앗 속을 쪼개본다
씨앗 속 씨앗 속에 씨알이 들어있다
사과 한 톨에
내가 들어있다
사과 한 톨에 우주가 들어있다.
(이선옥·시인)
+ 밥숟가락에 우주가 얹혀있다

그렇다

해의 살점이다
바람의 뼈다
물의 핏덩이다
흙의 기름이다

우주가
꼴깍 넘어가자
밤하늘에 쌀별
반짝반짝 눈뜨고 있다
(김종구·시인, 1957-)
+ 가슴속의 우주·2

가슴속의 달과 별과 함께 술을 마시네
취하면 그 손톱 더 길어 가슴 할퀴어도
가슴속의 우주 그 속으로 술을 부어라 .
(성기석·시인)
+ 나와 우주의 관계

눈은 별을 보기 위하여 있다.

별이 없으면 눈도 무용해진다.

별을 겨누지 말라
별을 쏘지 말라
그가 눈을 감으면
내 눈도 감기고 말리라.

우주엔
별이 눈이요,
마음엔
눈이 별이다.

별이 있어 눈이 있고
눈이 있음으로
별이 있는 것이다.
(황금찬·시인, 1918-)
+ 우주의 진리

시멘트 벽 틈 사이로
시금초 꽃 한 송이 피어 난 것도
그 안에 엄청난 우주의 진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이 세상에서 버림받는 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는 날
그 작고 보잘것없는 꽃조차도
하늘을 받치고 땅을 지지하는
우주의 한 부분임을 기억해내십시오

거센 비바람에 목이 꺾이고
가슴 깊이 상처를 입어도
이내 다시 햇살을 향해 환히 살아오르는
저 풀꽃처럼

어떤 사람도 대신 할 수 없는 당신은
참 오묘한 한 개의 단독 우주임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김영천·시인, 1948-)
+ 꿈꾸는 악기

입을 버리고 말을 버리고,
춤추는 손으로 대답한다.
춤추는 가슴으로 대답한다.
우주는 주인 잃은 꿈꾸는 악기,
네가 울면 허공에
별 하나 뜨고
지상의 목숨들은 탈춤을 춘다.
떨리는 나뭇잎은 가지 끝에서
출렁이는 물결은 바닷가에서
(오세영·시인, 1942-)
+ 우주를 지고 가는 사람 - 노을

스님 한 분이
타박타박 산비탈을
걸어가신다

작년 가을
산 속으로 떠난 아버지 뒷모습
환히 보인다

노을이 스님의 등 뒤에서
붉게 물들고 있다

우주를 지고 가는 큰스님 발아래
작은 새들이
풀잎 흔들며 길을 놓는다
(이영춘·시인, 1941-)
+ 내 안의 우주

내 안에도 세상이 있다.
새가 있다.
노랑할미새가 있고 은빛 찌르레기가 있다.
쇠종다리도 있고 까치도 있다.
그 새들이 울어 늘 새소리가 난다.
물소리와 바람소리도 있고
해와 달과 별도 있다.
내 안에도 작지만 그런 우주가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우주보단
훨씬 큰 우주이다.

너는 언제나 내 우주에 있고
너에게도 우주가 있다면
그곳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낮에는 티없이 푸른 하늘의 해가 되거나
밤에는 부서질 듯 찬란한 별이 되거나
아기 손처럼 보드라운 바람이 되어도 좋고
향기 짙은 야생 들꽃이 되어
우연히 너의 눈길이라도 끌면 좋겠다.
내 안의 우주가 언제나
너로 인해 그렇게 아름답듯이.
(안재동·시인, 1958-)
+ 우주의 노른자위

나는 곡예사
줄을 타며 부채를 접었다 펴고
포릉포릉 뜀을 뛰노라면
새가 따로 없지
내게는 쭈뼛쭈뼛 일어서는 모골이 없지
철렁철렁 내려앉는 심장도 없지
지금은 한여름
그것을 가져간 관객들은
무더운 밤을 서늘하게 건너고
건네준 나는 허공을 가지지
앞으로 넘어지면 코를 깨트리고
뒤로 넘어지면 뒤통수를 터트리는
바닥이 없는 땅이지
혈혈단신을 먹이고 재우고
날개 없는 몸이 새가 되는 법을 가르쳐준 곳
누구나 한 번쯤은 갖고 싶어하지만
그저 추억 속에 묻어두고 마는 곳
저기 아파트부지에 알 박기를 한 땅이 부러울까
아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삶이 다하는 날엔 줄을 잘라 목을 매면
좌청룡 우백호 구름구름 떠있을 천하제일의 명당
여기는 우주의 노른자위
(원무현·시인, 1963-)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윤수천의 ´가난한 자의 노래´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