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7일 월요일
김현승의 ´마음의 집´ 외
<마음을 노래하는 시 모음> 김현승의 ´마음의 집´ 외
+ 마음의 집
네 마음은
네 안에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 안에
있다.
마치 달팽이가 제 작은 집을
사랑하듯…
나의 피를 뿌리고
살을 찢던
네 이빨과 네 칼날도
내 마음의 아늑한 품속에선
어린아이와 같이 잠들고 만다.
마치 진흙 속에 묻히는
납덩이도 같이.
내 작은 손바닥처럼
내 조그만 마음은
이 세상 모든 榮光을 가리울 수도 있고,
누룩을 넣은 빵과 같이
아, 때로는 향기롭게 스스로 부풀기도 한다!
東洋의 智慧로 말하면
가장 큰 것은 없는 것이다.
내 마음은 그 가없음을
내 그릇에 알맞게 줄여 넣은 듯,
바래움의 입김을 불면 한없이 커진다.
그러나 나의 지혜는 또한
風船처럼 터지지 않을 때까지만 그것을…
네 마음은
네 안에 있으나
나는 내 마음 안에 살고 있다.
꽃의 아름다움은 제 가시와 살보다
제 뿌리 안에 더 풍성하게 피어나듯…
(김현승·시인, 1913-1975)
+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내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김광섭·시인, 1905-1977)
+ 내 마음
꿈길로 가만히 가면
무엇이나 다 볼 수 있고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는
내 마음
화가 나고 울고 싶다가도
금방 깔깔 웃기도
좋기도 한 내 마음
꼭 하나인 것 같으면서도
날마다 때마다
다른 빛깔 되는 마음
사진으로 찍어 낼 수만 있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정말 궁금한 내 마음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
강이 흐른다
그대와 나 사이
그리운 꽃 한 송이 피어나
그대와 나 사이
꽃향기로 묶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이 채운다.
(홍관희·시인, 1959-)
+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지요.
마음에 저절로 물드는
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
있는 그대로 물드는
그 그림자들도
마음먹은 뒤에 그래요.
마음을 먹는다는 말
기막힌 말이에요.
마음을 어쩐다구요?
마음을 먹어요!
그래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마음먹으니
노래예요.
춤이에요.
마음먹으니
만물의 귀로 듣고
만물의 눈으로 봐요.
마음먹으니
태곳적 마음
돌아보고
캄캄한데
동터요.
(정현종·시인, 1939-)
+ 우리들 마음속에
빛은 해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그대 손을 잡으면
거기 따뜻한 체온이 있듯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있는
사랑의 빛을 나는 안다.
마음속에 하늘이 있고
마음속에 해보다 더 눈부시고 따스한 사랑이 있어
어둡고 추운 골목에는
밤마다 어김없이 등불이 피어난다.
누군가는 세상은 추운 곳이라고 말하지만
또 누군가는 세상은 사막처럼
끝이 없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무거운 바위틈에서도 풀꽃이 피고
얼음장을 뚫고도 맑은 물이 흐르듯
그늘진 거리에 피어나는 사랑의 빛을 보라
거치른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을 보라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하늘 해보다 눈부시고
따스한 빛이 아니면 어두운 밤에
누가 저 등불을 켜는 것이며
세상에 봄을 가져다주리
(문정희·시인, 1947-)
+ 마음의 길
마음에도 길이 있어
아득하게 멀거나 좁을 대로 좁아져
숨가쁜 모양이다.
그 길 끊어진 자리에 절벽 있어
가다가 뛰어내리고 싶을 때 있는 모양이다.
마음에도 문이 있어
열리거나 닫히거나 더러는 비틀릴 때 있는 모양이다.
마음에도 항아리 있어
그 안에 누군가를 담아두고
오래오래 익혀 먹고 싶은 모양이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가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고 있는 저녁
일어서지 못한 몸이 따라 문밖을 나서는데
마음에도 길이 있어
갈 수 없는 곳과, 가고는 오지 않는 곳으로 나뉘는 모양이다.
(김재진·시인, 1955-)
+ 마음의 지도
몸에서 나간 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 나갔는데 벌써 내 주소 잊었는가 잃었는가
그 길 따라 함께 떠난 더운 사랑들
그러니까 내 몸은 그대 안에 들지 못했더랬구나
내 마음 그러니까 그대 몸 껴안지 못했더랬었구나
그대에게 가는 길에 철철 석유 뿌려놓고
내가 붙여댔던 불길들 그 불의 길들
그러니까 다 다른 곳으로 달려갔더랬구나
연기만 그러니까 매캐했던 것이구나
(이문재·시인, 1959-)
+ 마음은 무게가 없다
안동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할머니 한 분이
자기 키보다 더 큰
배낭을 짊어지고
거기다가 두 손에는
또 보따리까지 들고 내린다.
배낭에는 마늘이 들어 있고,
보따리에는 애호박 몇 개,
고추와 참깨가 들어 있다.
아들네 집인지
딸네 집인지 가는가 보다.
지하철 강변역 쪽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할머니, 이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들고 가시려고 가져오셨어요?˝
하며 보따리를 모두
건네받아 들어 드리자,
˝마음을 담아 왔지 별거 아니야!˝ 한다.
그러면서 마음은 무게가 없다 한다.
마음은 아무리 담아 와도
무겁지 않다고 한다.
마음은 아무리 가져와도
힘들지 않다 한다.
(윤동재·시인, 1958-)
+ 마음에 집이 없으면
마음에 집이 없으면
저승도 가지 못하지
저승에 간 사람들은 다들
마음에 집이 있었던 사람들이야
마음에 집이 없으면
사랑하는 애인도 데려다 재울 수 없지
잠잘 데 없어 떠도는 사람
잠 한 번 재워주지 못한 죄
그 대죄를 결코 면할 수 없지
마음에 집이 없으면
마당도 없고 꽃밭도 없지
꽃밭이 없으니 마음속에
그 언제 무슨 꽃이 피었겠니
마음에 집이 없으면
풍경소리도 들을 수 없지
마음에 세운 절 하나 없어
아무도 모시지도 못하고
누가 찾아와 쉬지도 못하고
마음에 집이 없으면
결국 집에 가지 못하지
집에 못 가면
저승에 계신 그리운 어머니도
뵙지 못하지
(정호승·시인, 1950-)
+ 예쁜 마음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런 생명과 생명이 서로 기대어
한세상 어우러지는 것
살아가는 일은 만만하지 않아
한숨도 나오고 눈물도 흐르는 것
때로 상처 입고 때로 상처를 입히며
눈 흘기는 인생살이 속에서도
미움과 무관심보다는 사랑과 인정(人情)이
더 크고 많은 것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은 없어도
고달픈 생명 하나 품어 주고픈
예쁜 마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세상은 살아갈 만한 것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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