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5일 토요일

겁, 겹, 혹은 껍질

껍질 속에 갇혀 있어
움크리고 있는 내가 둥글다
무덤 속의 삶이라서
한 차례 지나가버릴 겁이다
어제 내가 몇 개 먹은
천도복숭아가 둥글다
어제 내가 날카로운 칼로 가른
사과가 둥글다
어제 내가 한 송이 들고
씨만 뱉어버린 포도가 둥글다
어제 내가 길가 가판대에서 산
한물 간 수박이 둥글다
둥근 것은 껍질을 가지고 있다
알 속에 있는 것이
삼각형이나 사다리꼴이 아니라서
껍질도 둥글다
과일의 둥근 껍질을 벗겨낸다
한 겹, 껍질 두른 겁이다
뇌 가득한 머리도 둥글다
꽃과 열매의 향기를 품고 있는
씨도 둥글다
누군가 바람을 잔뜩 불어넣었는지
풍선처럼 부풀은 여인의
배도 둥글다
육신의 또 한 겹을 몸속에 지녔다
벗겨버릴 허물 같은 겁이다
조만간 물어 터지기 전에
저 둥근 껍질을 벗겨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