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9일 토요일

세찬(歲饌)

먼 훗날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는
내몸을 먹으로 갈아
한지에 가는 붓으로 쓰고
무덤 속에 봉한
한 통의 유물 같은 편지일뿐
오래된 상형문자라
해석하기 어려운 글이라 말고
사랑의 어순을
찬찬히 꿰맞추어 읽어주기 바란다
그것이 돌에 새긴 마애거나
몸에 새긴 문신이거나
결코 지울 수 없는 당신에게 드릴
세상의 가장 큰 선물이라서
허나, 내가 지닌 것이라고는
곧 썩어 문드러져
흙으로 돌아갈 육신 하나뿐이라
한 해의 세찬으로
나를 보시하여 드릴테니
먼 바다 어디로 노젓는
풍경 소리 들을 수 있겠다
돌 많은 부도밭에서
가슴 치는 목탁 소리 들을 수 있겠다
당신의 이승에서
붉디붉은 입술의 꽃부터
푸르른 마음의 잎까지
내가 빼앗아 가진 것 많아서
저승의 내가 드릴 것이 한이 없으니
내몸의 두루마기를 펼쳐
연애 편지 읽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