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7일 목요일

이수익 시인의 ´나에겐 병이 있었노라´ 외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 모음>

이수익 시인의 ´나에겐 병이 있었노라´ 외
+ 나에겐 병이 있었노라

강물은 깊을수록
고요하고
그리움은 짙을수록 말을 잃는 것

다만 눈으로 말하고
돌아서면 홀로 입술 부르트는
연모의 질긴 뿌리 쑥물처럼 쓰디쓴
사랑의 지병을

아는가
그대 머언 사람아
(이수익·시인, 1942-)
+ 천 개의 그리움

이름이 하나이어도
그리움은
천 개나 되듯이

마음이 하나이어도
눈물은 천 개가
넘습니다

온 들판을 가르는
푸른 잔디처럼
잔디에 맺힌
천천 개의 이슬방울처럼

보십시오
내게 당신은 너무
많습니다
(김영천·시인, 1948-)
+ 짧은 해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갈대가 하얗게 피고
바람 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김용택·시인, 1948-)
+ 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시인, 1952-)
+ 그리움

우리가
서로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우린 더욱 사람으로 빛나리라

우리가
서로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우리는 짐승들 속에서도
더욱 사람으로 빛나리라
나부끼는 갈대밭 님이여
(김준태·시인, 1948-)
+ 짝사랑

반딧불은 얼마나 별을 사모하였기에
저리 별빛에 사무쳐
저리 별빛이 되어
스-윽,스-윽,
어둠 속을 나는가
(함민복·시인, 1962-)
+ 순간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 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문정희·시인, 1947-)
+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보고 싶다,
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 차고 가득 차면 문득
너는 내 앞에 나타나고

어둠 속에 촛불 켜지듯
너는 내 앞에 나와서 웃고
보고 싶었다
너를 보고 싶었다는 말이
입에 차고 가득 차면 문득

너는 나무 아래서
나를 기다린다.
내가 지나는 길목에서
풀잎 되어 햇빛 되어 나를 기다린다.
(나태주·시인, 1945-)
+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

하필 이 저물녘
긴 그림자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한 그루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서
사람을 그리워하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
홀로 선 나무처럼
고독한 일이다.
제 그림자만 마냥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
나무처럼 참 쓸쓸한 일이다
(오인태·시인, 1962-)
+ 짧은 시간을 길게 만드는 그리움

내 마음속의 그리움을
살짝 꺼내서
길게 늘어뜨리면
어디까지 가 닿을까
은하수에라도 가 닿으면
작은 배를 띄우고
목청껏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한 사람의 생애는
가슴 떨리는
그리움의 길이만큼
행복하다고 하는데

짧은 시간 속에서 만드는
우리의 그리움
그리움으로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생애

내 마음속에 숨어있는
그리움의 길이는 도대체
어느 만큼일까

한 사람의 생애는
가슴 떨리는
그리움의 길이만큼
행복하다고 하는데..
(윤수천·시인, 1942-)
+ 기다림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봅니다
나는 팔도 다리도 없어 당신에게 가지 못하고
당신에게 드릴 말씀 전해 줄 친구도 없으니
오다가다 당신은 나를 잊으셨겠지요
당신을 보고 싶어도 나는 갈 수 없지만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오셔요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셔요
나는 팔도 다리도 없으니 당신을 잡을 수 없고
잡을 힘도 마음도 내겐 없답니다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보니
첩첩 가로누운 산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집니다
(이성복·시인, 1952-)
+ 그리움의 풍경

나의 그리움에도
풍경은 있다

며칠 새 주룩주룩
그리움의 눈물이더니
오늘은 온 세상이 환한
그리움의 햇살

나의 그리움은 불변이지만
그리움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고운 햇살 아래
나의 그리움은 따스하다
햇살 같은 미소를
빙그레 지으시는 님

지저귀는 새소리 들으며
나의 그리움은 명랑하다
발랄한 재잘거림으로
나를 다정히 위로하시는 님

라일락꽃 그늘 아래
나의 그리움은 향기롭다
실바람 타고 오는
내 님의 향긋한 내음

지는 꽃잎을 보며
나의 그리움은 눈물겹다
우리의 사랑도
세월 가면 그렇게 질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들으며
나의 그리움은 슬픔에 잠긴다
이 밤도 수없이 피고 지는
보고픈 님의 모습

나의 그리움은 불변이지만
그리움의 얼굴은 다채롭다
(정연복,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