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7일 목요일

이복숙의 ´하늘이 보이는 때´ 외


<하늘 시 모음> 이복숙의 ´하늘이 보이는 때´ 외

+ 하늘이 보이는 때

하늘은
늘 열리어 있습니다만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메마르지 않은 사람에게만
하늘은 보이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살면서도
참 오랜만에야 하늘을 보는 것은
이따금씩만
마음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볼 적마다
이제는 늘 하늘을 보며 살자 마음먹지만
그러한 생각은
곧 잊히고 맙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늘은 열리어 있지만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만에야
참 오랜만에야
하늘은 보이는 것입니다
(이복숙·시인)
+ 하늘

친구야 길을 가다 지치면 하늘을 봐
하늘은 바라보라고 있는 거야
사는 일은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니까
살다보면 지치기도 하겠지만
그러더라도 그러더라도 체념의
고개를 떨구지 말라고
희망마저 포기해 웃음마저
잃지 말라고
하늘은 저리 높은 곳에 있는 거야.
정녕 주저앉고 싶을 정도의 절망의
무게가 몸과 마음을
짓눌러 와도
용기를 잃지 말라고 살라고
신념을 잃지 말라고 살라고
(이동식·시인, 1966-)
+ 천성天性

하늘은
작은 구름
큰 구름

껴안고 사네.
(정세훈·시인, 1955-)
+ 하늘

하늘가에 앉아서
푸르디푸른 용소(龍沼) 같은
하늘 둑에 앉아서
얼마나 깊은가 들여다보네
풍덩,
제비 한 마리
헤엄쳐 들어갔다가
물내도 못 맡고
되돌아오네.
(임보·시인, 1940-)
+ 하늘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박두진·시인, 1916-1998)
+ 마음의 태양

꽃 사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자.

가시밭길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에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른다.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 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자.
(조지훈·시인, 1920-1968)
+ 나의 하늘은

그 푸른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하늘을 바라봅니다

살아가는 일에서나
사람들 사이에서 서툴고 낯설 때
무심코 하늘을 봅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눅눅하고 찰지게 배어와 걸음의 폭 셀 때
가벼운 몸짓 익히려 하늘을 봅니다
허허한 것들이 키를 늘리고 푸르게 돋아나
낯선 용기가 가지를 뻗을 때
부질없는 것들 떨쳐내려 하늘을 봅니다.
잊었던 것들이
선명한 모양과 빛깔과 향기를 가지고 가득 차 올 때
닿을 수 없는 것들이 눈과 마음에 닻을 내려
켜켜이 섬을 이룰 때
그리운 마음 접으려 하늘을 바라봅니다.
(오경옥·시인)
+ 하늘 도서관

오늘도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렸다

되도록 허름한 생각들을 걸치고 산다
허름한 생각들은 고독과도 같다
고독을 빼앗기면
물을 빼앗긴 물고기처럼 된다

21세기에도 허공은 있다
바라볼 하늘이 있다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
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

내일도 나는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빌리리라
(최승자·시인, 1952-)
+ 하늘

하늘이 바로
내 위에 앉았습니다.

하늘빛이 너무 고와
손을 담그고 싶었습니다.
발돋음치고 손을 뻗쳐보아도
닿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손을 씻으면
마음도 파래질 것 같아

그냥 그렇게
마음으로만 닿아 본 하늘에
내 마음 한 자리를 담아 둡니다.
(서영아·시인)
+ 빈 하늘

조금은
가난하게 살고 싶다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어 있다는 것
나의 사랑도
그렇게 비어 있고 싶다

비어 있는 곳을 찾아
자꾸만 채우며 살아가고 싶다

하늘은 늘 가난하다
그래서 곧잘 구름 벗어 비어 있다
비어 있을 때마다
더욱 푸르러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더욱 더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걸 보다가
나는 그만 좌르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구재기·시인, 195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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