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창窓

오래전부터 내게
안경이나 돋보기 혹은
현미경이나 망원경 같은
불혹의 창이 있다
금약禁約으로 맺은 친구라서
때때로 우물 깊은 세상을
한참 들여다 보기 좋다
내게 또 가까이
작은 거울이나 큰 유리문 같은
유혹을 막아주는 창이 있다
속내를 꺼내 보여주거나
세찬 눈보라나 쏟아지는 소나기
혹은 북풍 한기를 막아주기도 한다
창을 열어 놓은 적도 있어서
햇볕 뜨거운 날에는 바람 불어와
머리카락 시원하게 날린다
이제 내 살갗에 달라붙어
저절로 열리거나 닫히거나
스스로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저 창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스르륵 창을 닫고
그 아래 숨어버린 적도 있었다
바닥에 세게 내던져
산산조각 깨뜨려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창은 여전히 그곳에서
우정어린 옛 벗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쌓이고 퇴적하여
이끼가 끼고 녹이 슨다 하여도
맹세한 창을 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