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황혼 -마광수-

스러져 가는 것은 아름답다
나는 황혼을 바라보며 내 삶을 반추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그리워 헐레벌떡 달려왔던가
무엇이 그리 보람돼 열심히 살아왔던가

어차피 이 나라에서의 인생엔 기대를 걸지 말았어야 할 것을
어차피 이 나라에서의 자유엔 희망을 두지 말았어야 할 것을

아니 어느 나라든 인생은 그저 먹고 자고의 반복인 것을
아니 어느 별이든 생명은 그 자체가 이미 슬픈 것을

자식을 낳기 싫으면 사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죽은 뒤의 일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면 글조차 쓰지 말았어야 할 것을

황혼처럼 활활 불타게 세상에 불이나 지르고 죽을까
황혼처럼 멋지게 놈들을 타당탕 쏘아 죽이고 죽을까

아아 그래봤자 어차피 세상은 징그럽게 거듭될 것을
그래 봤자 어차피 놈들도 징그럽게 되살아날 것을

스러져 가는 것은 아름답다
나는 황혼을 바라보며 어떻게 슬져 가야 아름다울지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