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은
그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도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을놈의 고독은 취하지도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는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그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는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이를 못 보겠다
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더 태어나는 이를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게는 하품이 잦아 있었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나타난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은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하던 사람은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은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 주었다
삼백육십오 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이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하다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