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4일 금요일

숭례문과 가역반응

숭례문과 가역반응


이성룡



반세기만에 원형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잿더미가 된 숭례문 아래 와 무릎을 꿇는다
육백년을 잃어버렸다고 탄식하는 죄인들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할 수 있는 고행苦行이란
능지처참 당한 숭례문의 잔해를 들고
고작 시구문屍軀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몇 벌의 누더기 옷을 걸어놓은 채
반세기 동안 허망한 유랑을 하고 돌아와
제 슬픈 족보를 보듬고 우는 짓거리 아닌가
제국주의 언어에 몰입하고 대운하에 허우적거리는
저 불효막심한 자들의 뇌 속에
아직 참회와 분노 기제가 남았었다니
그래, 저 뿌리 깊은 자존심이 거적에 덮인 뒤에나마
저토록 처절한 각성제가 될 수 있다면
남은 재가 다시 불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아, 그러면 얼마나 슬픈 아름다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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