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0일 금요일

박두순의 ´꽃을 보려면´ 외


<꽃에 관한 동시 모음> 박두순의 ´꽃을 보려면´ 외
+ 꽃을 보려면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꽃

낮에도
등불을 켠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낮에도
밤처럼 캄캄한
누군가를 위해서.
(정갑숙·아동문학가, 1963-)
+ 자석

꽃들은 자석인가 봐요
나를 끌어당겨요

꽃에게 끌리는 것 보면
나는 꽃과 다른 극인가 봐요

고운 빛깔 만져 보고
향긋한 향기 맡다 보면

나도 조금은 꽃과 같은 극이 되는지
꽃 떠날 때 마음이 밝아져요
(함민복·시인, 1962-)
+ 제비꽃

키가 작은 건
키가 작은 건

내세울 줄 모르기 때문이야.
자랑할 줄 모르기 때문이야.

키를 낮추는 건
키를 낮추는 건

한 치라도 하늘을 높이기 위해서야.
닿을 수 없는 먼 그리움 때문이야.
(양재홍·아동문학가)
+ 꽃들이 예쁜 건

라이락
향내음을
나누어 주고도,

개나리
꽃잔치를
차려 놓고도,

조용하다.
(심효숙·아동문학가, 1962-)
+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좀 더 환해지거라.˝
˝더욱 밝아지거라.˝

그들의 속삭임을
내가 알아듣기 때문이지요.

˝이웃끼리 환해지게.˝
˝온 누리가 밝아지게.˝

그들의 속마음을
내가 알아보기 때문이지요.
(허동인·아동문학가)
+ 꽃은 엄마다

꽃은
엄마다.

나비 엄마다
별 엄마다.

나비를 불러
젖을 주고,

벌을 불러
젖을 주고.
(김마리아·아동문학가)
+ 꽃은

또래끼리
무더기로
다투어 피는 곳에서도
온 힘 다해 피고

담 모퉁이
홀로
외롭게 피는 곳에서도
온 힘 다해 핀다.
(김효순·아동문학가, 경북 안동 출생)
+ 꽃밭

채송화 옆에
봉숭아,
봉숭아 옆에
백일홍,
백일홍 옆에
맨드라미,
맨드라미 옆에
접시꽃,
접시꽃 옆에
나팔꽃,
나팔꽃 옆에
해바라기,
해바라기 옆에
돌담장.

돌담장에
잠자리 한 마리
졸고 앉았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작은 꽃

산책하는 길섶에
방긋 웃고 있는 작은 꽃
하도 작아서 놓칠 뻔했다.

곁에 쪼그리고 앉아
밝은 눈을 바라보고 있다.
신기하다는 눈빛이다.

처음으로 꽃을 피우면서
만세 소리를 외쳤을 게다.
드디어 해냈다는 눈빛이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꽃길에서

꽃송이에
코를 대고 머무릅니다.

얼굴에
꽃물이
바알갛게 들었습니다.

입맛을 다시며
꽃내음을 꼭꼭 씹어 먹다가

꽃향기에
발이 포옥 묻혀
못 가고 서있습니다.
(이연승·아동문학가)
+ 분꽃

네가 분꽃 같다는 걸
네 떠난 후에야
나는 알았다.

필 때는 여기저기
작은 몸짓으로
있는 듯, 없는 듯하더니

지고 난 그 자리에
네 얼굴보다 더
선명한 까만 씨앗

덩그마니
가슴 속 지워지지 않는
네 그림자.
(장승련·아동문학가)
+ 꽃과 농부

-조팝꽃 오거든
못자리 내야지.

-찔레꽃 오거든
모내기 해야지.

농부는
꽃도 믿고 살고

꽃은 농부를 위해
산골까지 온다.
(유미희·아동문학가, 충남 서산 출생)
+ 예쁘지는 않지만

꽃이라면 먼저
향기롭고 예쁜 꽃만 떠올렸었지.
개나리, 목련. 수수꽃다리……

예쁘지는 않지만
푸른 덩굴에
흰나비처럼 앉아 있는 완두콩 꽃
언제 피었었는지도 모르게 피었다가
시들어 툭 떨어지는 오이 꽃
잎사귀 뒤 몰래 피는
보랏빛 가지 꽃

우리가 까무룩 잊을 무렵
밥상 위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맛있는 완두콩밥으로
오이냉국
가지무침으로.
(민현숙·아동문학가)
+ 너는 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울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눈부시어
울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아파트 10층 시멘트벽 물통 사이
조막손을 비틀고 붉게
온몸을 물들인 채송화 하나
그래도 나는 살아 있다
눈물인 듯 매달려 피었습니다
무릎을 꿇는 햇살 하나
그를 껴안은 채
어깨를 떨고 있었습니다
(이도윤·시인)
+ 꽃과 나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꽃을 바라봅니다

꽃이 나를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나도 꽃을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십니다

꽃은 아마
내가 꽃인 줄 아나봅니다
(정호승·시인, 1950-)
+ 감자꽃

흰 꽃잎이 작다고
톡 쏘는 향기가 없다고
얕보지는 마세요

그날이 올 때까지는
땅속에다
꼭꼭
숨겨둔 게 있다고요

우리한테도
숨겨둔
주먹이 있다고요.
(안도현·시인, 1961-)
+ 꽃과 사람

벌레 먹기도 하고
벌레 먹은 자국도 있고
시들기도 하는 꽃이
살아 있는 꽃이야.

날마다 피어 있고
날마다 살아 있는 꽃은
죽은 꽃이야,
종이꽃.

화도 내고
실수도 하면서
눈물도 있는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이야,
이 아빠 같은.

날마다 예쁜 얼굴
날마다 웃는 얼굴
그건 죽은 사람,
마네킹이야.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 꽃밭과 순이

분이는 다알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맘에 든다고 한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너는 무슨 꽃이 제일 예쁘니?
채송화가 좋지?
그러나 순이는 말이 없다.
소아바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 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되었던 포플라 막대기가.
(이오덕·아동문학가, 1925-2003)
+ 이라크에 피는 꽃

여기선
벚꽃 구경 가느라
차들이 늘어섰는데

이라크에도
봄이 왔을까
꽃들이 피었을까

화면 속에서는
거센 모래폭풍과
칠흑 같은 밤하늘에
빗발처럼 쏟아지는 포탄들

여기에선
벚꽃이 꽃망울 터뜨리는데
이라크에선
포탄이 파편을 터뜨린다

여기에선
거리마다 꽃향기가 흐르는데
이라크에선
곳곳마다 피비린내가 흐른다.
(김은영·아동문학가, 196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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