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일 금요일

당신의 발

아버지의 발을 씻는다고
드러누운 바지를 걷어 올리자
반쯤 타버린 나무토막뿐이다
당신의 발이 사라지고 없다
아니 당신의 발이
다 닳아 없어졌다고 해야 옳겠다
아니 당신이 발을
다 잘라주었다고 해야 맞겠다
뼈에 달라붙은 살거죽으로
집 하나 지렁이처럼 질질 끌고 오셨다
생의 도처에 깔린 지뢰밭에 속지 않고
하늘 아래 피난와 살고 계신 당신
목숨 절뚝거리며
군화 신고 걸어온 산길이
만주에서 제주까지라던가
폭풍의 세월을 헤쳐온 물길이
독도에서 백령도까지라던가
이제 금수錦繡 아닌 금수禽獸 가득한
강산에 눈길 주기 싫다고
뭉툭한 발목에 도끼 자국이 선명하다
새벽같이 저벅저벅 걸어가
휴전선을 넘었다던가
비무장지대를 넘었다던가
몽유夢遊 같은 당신의 발이 축축하다
손으로 온몸 더듬어 만져도
바람처럼 빠져나간 아버지의 발
단단한 사리로 남은
당신의 발을 찾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