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일 금요일
정현종 시인의 ´한 숟가락 흙 속에´ 외
<흙과 땅에 관한 시 모음> 정현종 시인의 ´한 숟가락 흙 속에´ 외
+ 한 숟가락 흙 속에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 억 마리의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
(정현종·시인, 1939-)
+ 너는 흙이니 흙으로 살아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살아라
죽어서 흙될 일 생각 말고
살아서 너는 흙으로 살아라
온갖 썩는 것 더러운 것
말없이 품 열고 받아들여
오래 견디는 참 사랑
모든 것 삭이는 세월에 묻었다가
온갖 좋은 것 토해 내어
마침내 열매 맺히도록
다시 말없이 버텨주는 흙으로
흙으로 살아라 너는 흙이니
오오, 거룩한 흙으로 살아라
(이현주·목사)
+ 한 삽의 흙
밭에 가서 한 삽 깊이 떠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삽날에 발굴된 낯선 흙빛,
오래 묻혀 있던 돌멩이들이 깨어나고
놀라 흩어지는 벌레들과
사금파리와 마른 뿌리들로 이루어진
말의 지층
빛에 마악 깨어난 세계가
하늘을 향해 봉긋하게 엎드려 있다
묵정밭 같은 내 정수리를
누가 저렇게 한 삽 깊이 떠놓고 가버렸으면
그러면 처음 죄 지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 가슴으로 엎드려 있을 텐데
물기 머금은 말들을 마구 토해낼 텐데
가슴에 오글거리던 벌레들 다 놓아줄 텐데
내 속의 사금파리에 내가 찔려 피 흘릴 텐데
마른 뿌리에 새순을 돋게 할 수는 없어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말을 웅얼거릴 수 있을 텐데
오늘의 경작은
깊이 떠놓은 한 삽의 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
(나희덕·시인, 1966-)
+ 흙
풀씨가 들어와 앉으면
풀씨네 집이 되고,
고욤나무 뿌리 내리면
고욤나무네 집이 되고,
땅강아지가 들어가 살면
땅강아지네 집이 되고,
두더지가 파고 들어가면
두더지네 땅굴이 된다.
(정현정·아동문학가, 1959-)
+ 풀씨를 위해
봄 하늘 구름은
빨리
봄비가 되고 싶다.
땅 속
촉촉이 젖어들고 싶다.
바위 틈
촉촉이 스며들고 싶다.
흙 속
여기저기 묻힌
바윗돌 이 틈 저 틈 끼인
지금 막 눈 뜰
이름 모르는
풀씨를 위해.
(이창건·아동문학가, 1951-)
+ 가물 때 땅은
빗방울을 다 받으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방울방울 다 받으려고.
산골에는 도랑을
마을에는 시내를
들에는 강을
넓디넓은 바다까지
다 열어 놓고.
그 큰 땅이 자그마한 빗방울을
다 받으려고
고기들 입까지 오물거리게 한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흙님
할머니가 옥상에다
고추 모종 심던 날
흙 구하기 힘들다며
속상해하셨다
시골 가면 밟히는 게 흙인데
흙 구하기도 힘들다며
뒷집 화단을 넘겨다 보셨다
- 흙 필요하면 퍼다 쓰세요
뒷집 아줌마 소리에
얼른 흙을 담아 오시며
할머니가 소리치셨다
- 흙님 모셔왔다
(이묘신·아동문학가)
+ 발에는 흙을
발에는 흙을
손에는 연장을
눈에는 꽃을
귀에는 새소리를
코에는 풀냄새를
입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노래를
피부에는 땀을
마음에는 바람을
(작자 미상)
+ 날마다 두 발로
날마다 두 발로 흙을 밟아라
물 속에도 뛰어들고
가끔씩 불가에서 몸을 말리라
매순간 바람으로 자신을 애무하라
물의 누이와 불의 형제와
어머니 대지와 아버지 하늘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은
하루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다툼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도로티 쉴르)
+ 땅의 혁명을
급합니다 호흡이 점점 가빠옵니다
중환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이 땅을 숨통을 터주어야 합니다
땅의 혁명을 해야 합니다
아아 땅의 혁명을
(이선관·시인, 1942-)
+ 땅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심는 대로 열매를 맺는 땅과 같이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 하지 않는
욕심 없고 깨끗한 마음을
내게 허락하소서.
수고하고 땀 흘린 만큼
돌려주는 땅과 같이
얻은 것만큼
누군가에게 환원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호미질 쟁기질 하면 할 수록
부드러워지는 땅과 같이
핍박받고 고난 당할수록
온유한 성품 갖게 하소서.
모진 풍파 극복하며
새 생명 키워내는 땅과 같이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사람 되게 하소서.
이름 모를 들풀과 잡초에게조차도
자기를 내어주는 땅과 같이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 넉넉한 사람 되게 하소서.
소리 없이 자기 몸을 가르며
씨앗의 성장을 돕는 땅과 같이
주변 사람의 변화를 돕는
온전한 사랑을 베풀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작자 미상)
+ 흙 가까이
서산에 해 기울어 산그늘이 내릴 무렵
훨훨 벗어부치고 맨발로 채소밭에 들어가
김 매는 일이 요즘 오두막의 해질녘 일과이다.
맨발로 밭흙을 밟는 그 감촉을 무엇에 비기랴.
흙을 가까이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흙을 가까이 하라.
흙에서 생명의 싹이 움튼다.
흙을 가까이 하라.
나약하고 관념적인 도시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흙을 가까이 해야
삶의 뿌리를 든든한 대지에 내릴 수 있다.
우리에게 대지는 영원한 모성
흙에서 음식물을 길러 내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
그 위를 직립 보행하면서 살다가
마침내는 그 흙에 누워 삭아지고 마는 것이
우리들 삶의 방식이다.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씨앗을 뿌리면 움이 트고
잎과 가지가 펼쳐져 거기 꽃과 열매가 맺힌다.
생명의 발아 현상을 통해
불가사적인 영역에도 눈을 뜨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흙을 가까이 하면
흙의 덕을 배워 순박하고 겸허해지며
믿고 기다릴 줄을 안다.
흙에는 거짓이 없고
추월과 무질서도 없다.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다.
비가 내리는 자연의 소리마저
도시는 거부한다.
그러나 흙은 비를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흙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인간의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결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구두와 양말을 벗어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흙을 맨발로 접촉해 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순수한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법정·스님)
+ 땅을 위한 진혼곡
땅이여,
아직 죽은 것은 아니지만
막 숨이 넘어가려고 하는
그대에게 평화 있어라.
여기 한 노래가 있다.
그대와 나의 장례를 위하여
내 가슴속에 휘갈겨 쓴 노래.
독성이 서린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내일 그대의 몸은 차갑고 무감각하게 되리니,
그때에는 아무것도 이 땅에 남지 않으리라.
나 또한 이 땅에 존재하지 못하리라.
그리하여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혹은 그대의 잿빛 얼굴에
한 방울 눈물을 떨구기 위하여,
막 숨이 넘어가려고 하는 그대,
땅을 위하여 내 이 노래를 휘갈겨 쓰노라.
그대는 수없이 많은
비사교적인 자녀들을 낳았지.
그대는 그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을 보며
남몰래 슬픔의 눈물을 흘렸지.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그대를 잡아먹기 시작했지.
그러나 그대, 모든 것을 참아내는 그대는
아무런 저항이나 방해의 몸짓도 하지 않았지.
그대의 품안에서 젖을 빨며
포동포동 살이 오른 그들은
새로운 갈증을 느꼈지.
그대의 신성한 가슴의 피를 빨아먹고픈
그들의 마지막 갈증을.
그들은 태양이 사랑하는 신부에게 입혀 준
녹색 옷을 그대에게서 벗겨버렸지.
그대의 여린 살 속으로
그들은 날카로운 손톱자국을 새기고,
그대의 상처에서 용솟음치는
피를 빨아먹었지.
그대 자신의 자녀의 죄와 수치라는
무거운 짐 아래,
약탈당하고 추방당하고
머리가 벗겨지고 등이 굽은 그대.
이제 그대는 우주 속에서
홀로 방황하노라.
땅이여, 아직은 죽지 않았지만
막 숨이 넘어가고 있는 땅이여,
그대에게 평화 있어라.
(작자 미상, 정연복 역)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외 "> 천양희 시인의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