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7일 토요일

벌초

벌초

김종제
큰물 몇 차례 지나간 뒤
누워있는 아버지 위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아버지가 억센 잡초에
포로가 되어 수풀 속에 갇히셨다
아버지가 함부로 돋아난 가시덩굴에
손발이 묶이셨다
불시에 아버지에게 뿌리를 내려
몸 갉아먹는 풀 베어버린다고
날 선 낫을 들었다
살 속 깊이 박혀 있어서
팔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튀어나온 뼈가 앙상하다
아버지에게 달라붙어
피 빨아먹고 기생한 세월들이
낫질 한 번에
수북하게 무덤으로 쌓였다
언젠가 아버지의 단단한 城을 무너뜨리려고
나의 가슴에 불을 지른 적이 있었다
이제 봉분 같은 아버지 가슴에
활활 불을 지른다
아직 푸릇푸릇 살아있는 목숨이
온몸을 뒤틀면서 한 소리 하고 있다
변신한 생이 짙고 매워서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길 막히기 전에 어서 떠나야 한다고
아버지의 남은 생을 마구 파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