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저문 강에 가보았는가
저문 강에 가 보았는가?
들국화 꽃잎 처연히 떠가고
기러기떼 번호 붙여 구보하는
가을 어느 쓸쓸한 때에
흐르는 물인 듯
갈대 흐느끼는 강에 가 보았는가?
달빛 투신한 강에서
갈대의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슬픔을 보았는가?
갈대의 가슴을 파고드는 설움을 보았는가?
밀리고 밀리다가
고즈넉이 이른 잠을 청하는 갈대숲에서
숨죽여 우는 물이며 바람을 보았는가?
그리 한탄할 일을 저지른 것 없고
그리 내세울 명함 하나 없이
시간을 하류로 흘려보낸 사내가
저문 강의 갈대로 서성이는 것을
갈대의 아랫도리를 붙잡고 안기는 것을
그대는 보았는가?
- 이성룡 시집 ´비자나무숲에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