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6일 일요일

피란(避亂)

북쪽 멀리서
천둥 치는 포성 들려오고
철새들 무리지어
일제히 날아오는 것을 보니
하룻밤 사이에
겨울이
삼팔선 넘어 쳐들어오나 보다
건너갈 다리 끊어지기 전에
어서 빨리 피란가야겠다고
해 넘길 양식에 옷 한 벌에
밥그릇과 수저 한 짝
보퉁이에 챙겨넣고
여기 저기 나무 이파리 떨어진다
화가 난 세상으로부터
잠시 피신해야겠다고
따뜻한 남녘을 찾아간다
이방인의 계절 같은
이 동란에
정처없이 제 땅을 헤매다가
발에 밟혀 부서지고
목숨마저 빼앗긴다 할지라도
결코 투항하지 않겠다고
피란으로
나를 사수死守하는 것이다
한 겨울의
눈과 얼음에 밀리고 밀려
물 가까이 다다른다 할지라도
봄 햇살 같은 인천 상륙으로
나의 적들을 다 몰아낼 것이라고
오늘은 피란避亂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