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신혜경의 ´사람´ 외


<함께 사는 삶에 관한 시 모음> 신혜경의 ´사람´ 외
+ 사람

한문수업 시간
정년퇴임 앞둔 선생님께
제일 먼저 배운 한자는
옥편의 첫 글자 한 일(一)도 아니고
천자문의 하늘 천(天)도,
그 나이에 제일 큰 관심사였던
사랑 애(愛)는 더더욱 아니고
지게와 지게작대기에 비유한 사람 인(人)이었다

마흔을 훌쩍 넘은 지금도
사람 인(人)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등 기대고 있는 한 사람이 아슬하다
너와 나 사이가 아찔하다
(신혜경·시인, 1963-)
+ 사람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신광철·시인)
+ 밥알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이재무·시인, 1958-)
+ 장작불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는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 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 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끼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 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백무산·시인, 1955-)
+ 위로 받고 싶은 맘

가을걷이 끝난 휑한 들판에
어깨와 어깨를 비비며 서 있었다
위로 받고 싶은 맘 다 안다고
니 등 내 등 서로 토닥이며 서 있었다
위로 받고 싶은 맘 내게 있다면,
내가 먼저 너를 위로하리라
갈대꽃 하얗게 속삭이며 서 있었다
웬수야, 너도 이리와 봐라
사랑은 이런 거다
니도 와서 니 슬픔을 비벼보아라
갈대꽃 눈雪빛 스크럼을 짜고 있었다
(홍수희·시인)
+ 홀로 무엇을 하리

이 세상에 저 홀로 자랑스러운 거
무어 있으리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는 거
무어 있으리
흔들리는 풀잎 하나
저 홀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서있는 돌멩이 하나
저 홀로 서있는 게 아니다

멀리 있는 그대여

행여
그대 홀로 이 세상에 서있다고 생각하거든
행여
그대 홀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우리 함께 어린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자

밥그릇 속의 밥알 하나
저 홀로 우리의 양식이 될 수 없고
사랑하는 대상도 없이
저 홀로 아름다운 사람 있을 수 없듯
그대의 꿈이 뿌리 뻗은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며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나니.
(홍관희·시인, 1959-)
+ 사랑

우리가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굳게 만나
말 못하는 내가 그대의 다리가 되어 주고
걷지 못하는 그대가 나의 입이 되어 준다면
지평선 너머까지라도 가고픈 길을
우리는 하고픈 말을 하면서 갈 수 있겠네

우리가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만나
팔 못쓰는 내가 그대의 길이 되어 주고
앞 못보는 그대가 나의 팔이 되어 준다면
빛이 들끓는 그 곳까지 가고픈 길을
우리는 보고픈 것들을 보면서 갈 수 있겠네

그대의 어려움이 나의 사랑으로 풀리고
나의 어려움이 그대의 사랑으로 풀리며
우리가 굽힘없이 한 길 되어 꿋꿋이 나아간다면
척박한 이 세상도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겠네.
(홍관희·시인, 1959-)
+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꽃이 피고 소낙비가 내리고 낙엽이 흩어지고 함박눈이 내렸네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
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은 낯익은 사람이 되네
오래 써 친숙한 말로 인사를 건네면
금세 초록이 되는 마음들
그가 보는 하늘도 내가 보는 하늘도 다 함께 푸르렀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면 모두들 내일을 기약하고
밤에는 별이 뜨리라 말하지 않아도 믿었네
집들이 안녕의 문을 닫는 저녁엔
꽃의 말로 인사를 건네고
분홍신 신고 걸어가 닿을 내일이 있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네
불 켜진 집들의 마음을 나는 다 아네
오늘 그들의 소망과 내일 그들의 기원을 안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네
(이기철·시인, 1943-)
+ 얼음

강은, 겨울 동강은 자신을 사이에 둔 마을과 마을을, 강의
이편 저편 마을로 나누기 싫었던 것이다

자신을 사이에 두고 길은 끊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
도 끊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괜히 강 건너 서로를 미워하며 돌을 던지거나
큰소리로 욕이나 해대며 짧은 겨울 한낮을 다 보내는 것이
슬펐던 것이다

하여, 강은 지난밤 가리왕산의 북풍한설北風寒雪을 불러 제
살을 꽝꽝 얼려버린 것이다

저 하나 육신공양肉身供養으로 강 이편 마을들과 강 저편 마
을을 한 마을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정일근·시인, 1958-)
+ 사람을 쬐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유홍준·시인, 196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정현정의 ´밥상이 무거운 건´ 외"> 신새별의 ´어깨동무하기´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