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2일 일요일

오늘 같은날, 나는 머리를 자르고 싶어요. -문정희-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것은 무슨 일인가.
눈이 많이 내린 날, 떨리는 가슴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하늘에도 외롭고 슬픈 사람이 많이 살고 있구나.
이렇게 스산하고 향기로운 생각들이 쏟아지다니.

첫눈 오는 날은 사방에다 전화를 걸고 싶다.
드디어 오랜 방랑끝에 무사히 귀환했노라 외치고 싶다.
낯선 사람과 손잡고 그 따스한 온기를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숫자만 나오는 최신형 디지탈 시계는 싫어한다.
시계만은 구식이 좋다.
거기에는 꿈꾸는 시간과 함께 무한한 공간이 있기 때문.

시간이 우리를 쫓은 적이 없지만
우리는 언제나 시간에 쫓겨다닌다.
바쁘게 빠르게 사는 삶의 속도에 어느새 길들어 있다.
그래서 잠시라도 혼자만의 아늑한 시간을 갖게되면
기대밖의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쁘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아껴 주지 않는다.
나를 아끼는 첫걸음은
자신을 냉혹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겨울밤이 긴 것은
누구에겐가 긴 편지를 쓰라는 신호이며
바람불고 추운 것은
누구에겐가 따스한 사랑을 나눠주라는 신호.

´지금 여기에 이렇게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행복이라고 이름 붙일 줄 아는 지혜를 갖지 못한다면
행복이란 우리의 삶속에서
가장 투명하고 미약한 추상명사.

시간은 약이다.
이런 평범한 진리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를 잊을 수 없을 때, 그러나 잊어야 할 때.
바로 시간이라는 약에 한없이 기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은 독일때도 많다.
시간이란 독에 꽃은 어김없이 시들고,
아름다운 젊음이 시들고,
사람이 변질되는 것을 보라.
시간은 약이고 독이다.

일기를 쓰는 시간은 내가 나와 마주 앉는 시간.
내가 나를 사랑하는 시간,
내가 나를 미워하는 시간.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려고 길을 떠난다.
그러나 홀로 떠난 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바로 외로운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 속에 들어 있는
낯선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봄이라고 너무 얇은 옷을 입으면
봄과 함께 감기가 따라오기 쉽다.
사랑이나 우정도
너무 얇은 옷을 입고 만나면 허물이나 권태가 따라온다.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 들고 늙은 일이 아니라
정신의 성숙없이 그냥 육체만 늙어가는 그런 상태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혼자 만들어낸다.
꽃이 홀로 피듯이.

나이가 젊다고 해서 다 젊은 것은 아니다.
젊은 속에서 열정과 희망이 소금처럼 반짝거려야 하고
노을처럼 방황이 서려 있어야 한다.
열정과 희망은 꿈을 꾸게하고, 방황은 실수하게 한다.
꿈꾸는 것과 실수하는 것은 젊음이 갖는 특권이다.

고독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외롭고 쓸쓸한 고독이 아니라, 고고하고 그윽한 사색이
고여오는 고독의 공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