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이생진의 ´담배와 시´ 외


<담배 시 모음> 이생진의 ´담배와 시´ 외

+ 담배와 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잔인한 독재자의 뒤를 따라가는 일보다
젊은 친구의 담배연기를 따라가는 일
50m 전방에 담배 피는 사람이 보이면
슬그머니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러다가 문득
´저 사람도 시를 보면 피해 갈까´
하고는 미안해진다
저 사람이 싫어하는 짓을 나도 하면서
왜 저 사람만 밉다 하는가
그 사람은 담배연기로 시를 쓰는데
하고 내 시를 나무란다
(이생진·시인, 1929-)
+ 담배를 피우며

담배를 피우면
내 키가 처마에 닿는다
가을 나무 손가락에
구름이 걸린다

부질없이 낙엽을 태우지 말 일
우리 모두 불타면
하늘인 것을
(민용태·시인, 1943-)
+ 금연하는 이유

흡연은 인생의 낭비입니다

흡연으로 인해
폐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뚫린 구멍으로 세는 것들이 무서운 겁니다

사랑이 세 버리고
명예가 세고
돈이 세고
제 몸의 피와 살이 세고
생명이 세고
결국 혼이 빠져나가
가정이 깨지고
국가가 빈곤해집니다

흡연, 한 인생의 낭비이기 전에
지구의 멸망입니다.
(이영균·시인, 1954-)
+ 담배·3

곰방대와 찰떡궁합이 되어
할아버지가 몽롱하게 당했고
아버지도 똑같이 당했건만
나까지 넘어갈 줄이야
예저기 사랑의 흔적 남겨놓아
애먼 마누라까지 바가지 긁게
싸잡아 이간질하는
이 가문의 철천지원수
아들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씨도둑은 못하는 법이라서
미끈한 몸매로
까딱하면 너까지 넘보려 들 테니까,
내가 당해봐서 안다
한번 정을 주면
찰거머리 되어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권오범·시인)
+ 담배

중학교 때부터 피웠던 담배
그 때문에 학생부 선생님한테
참 많이도 맞았고
나름대로 끊으려도 노력도 했었지
그런데도 이틀을 못 넘겼어
그러다 널 만났지
그리구 니가 그랬지
자기를 싫어하는 만큼만 피우라고
그 뒤론 입에도 안 댔었는데

지금은 니가 없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울 수가 있는데
어쩌다 한 개피 물어도
이내 꺾어 버려
아직은 널 사랑하나 봐.
(서천우·시인)
+ 담배

너와 처음 만났을 때
숨이 가빠와 난 숨을 쉴 수 없었다
만날수록 편안함
그 속에서 난 행복을 느꼈다
술을 마시거나 글을 쓰거나 하면
너 없이는 외로워 손부터 떨렸지

너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 주었으나
너와의 숨은 사랑이 너무 고되어
이제 너와의 관계를 끊고 싶다
너와 아주 인연을 끊으려 하니
외상값부터 갚으라는 독촉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머리를 쥐어뜯는다
출근길 네 동생이 내 수레를 막고
계속 살라 행패 부리는 것도 싫끗하다*

이제 우리의 사랑, 우리의 인연
여기서 끝내면 안 될까
나를 이제 여기서 놓아주면 안 될까
더 이상 내 머리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될까
몸이 반쪽이 된 나를 애처로이 보아주면 안 될까
내가 반듯이 서지 못하면
네가 아무리 빛나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최범영·시인, 1958-)
*싫끗하다: ´몸서리쳐지다´의 충청도 방언
+ 사랑도 담배처럼

담배는
경고 문고가 있습니다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꼭 건강을
해치는 것만은 아닐 텐데요

사랑도 담배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경고 문고가
분명히 있는 것만 같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랑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사랑을 한다고 해서
꼭 마음이
아픈 것만은 아닐 텐데요
(김병훈·시인)
+ 공중화장실에서의 문득 깨달음

담배 연기로 오리무중인 버스터미널 공중화장실에서
어떤 놈들이 뱉어낸 매캐한 담배 연기를 마시면서
미지의 폐들 속에 들어갔다 나온 매연을 들이키면서

내 허파를 씻은 공기들이 또 누구의 허파 속에서
좌충우돌 구석구석 요동을 치다 나올까를 생각하면서
우리들은 한 물에 노는 물고기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공기가 사람과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들
모든 생명들을 묶고 있는 단단한 끈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한 담배 연기의 버스터미널 공중화장실
(임보·시인, 1940-)
+ 난 담배 안 끊어!

예로부터 한국사람
배고픈 놈 밥 한 숟가락은 안 나눠줘도
담배인심 술인심 하나만은 후했는데
담배값을 오천원까지 올려 받겠다네?
이제 앞으로는 담배 한 개비 달란 말
함부로 할 수 없겠다
여봐, 힘든데 담배 한 대 꼬실르고 허소
하면서 담배 권할 일 없겠어

국민건강을 염려해서 금연을 권장하는
그 가상하고 기특한 속을 몰라서가 아니라
담배값을 그렇게 올려서
맘먹은 대로
한국성인의 흡연율 60.5%를 30%선까지 낮췄다고 쳐
그럼, 담배장사는 굶어죽나?
한국담배인삼공사 말고
저 말보로, 마일드쎄븐 말이지
저들이 가만있겠느냐고
저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당장에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고
슈퍼 301존가 뭔가 들이대며
통상보복하겠다고 나댈 게 분명한데
그 다음 사단을 누가 책임질라고
그 뿐이겠어?
까딱 잘못했다가는 이라크쪼 나지
안 그런단 보장 있어?
없는 일도 만들어서 어거지쓰고
말로 할 일에도 다짜고짜 팔잡아 비틀고
다리걷어 넘어뜨리고 하는 거 안 봐?

그렇게 되기 싫으면 차라리 여태 하던 것처럼
외국산 담배의 국내시장 점유율을 더 왕창 끌어 올려줘서
저들 기분 헤낙낙하게 해주는 게 백배 낫지
언제 우리 건강 걱정해 달랬나
괜한 일로 또 열불나게 하고 있어
이 땅에 살아오면서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고 살 수 있는 세상
하루라도 있었어?

이 썩어 문드러져 구역질나는 세상을
그도 없이 어찌 살아?
난 담배 안 끊어

못.끊.어!
(서재남·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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